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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가 없고 점령해도 지키기 힘들어서 방치 했던게 맞는 거 같습니다 !!
고려 때도 보면 만주쪽은 거의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었던 듯 싶어요... 여진족도 상당수가 함경도 지방에 내려와 살고 있었고...
명나라가 원나라 몰아 내고 세운 영토 최대치도 요동 까지가 최대죠...
만주 쪽은 부족 단위로 있던 여진 족 외에는 나라 라고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죠....
세종 때 여진이 약해진 틈을 타서 압록강 두만강을 경계로 만들었는데....
사실 여진족이 금나라 망한뒤 부족 단위로 뿔뿔이 살던 시절이라 그 위 쪽은 무주공산이었던 거 같더라고요....
그 당시에 우리가 만주 쪽으로 진출 했으면 여진족들 약간의 저항 말고는 간섭할 세력도 없었는데...
근데 땅을 한번 점령하면 끝이 아니라 거기를 내 땅으로 만들려면 사람들 이주 시키고 도시 건설 하고 농경지 만들고 성도 쌓고 그래야 되는 일이라..
군사력 보다도 그 넓은 땅을 경영할 인구와 돈과 이런게 없었던 듯 싶어요...
아무 것도 없는데에 그렇게 할 이유가 없었던 거 같습니다 !!
여진족이 점차 인구 증가시켜서 10만 군대를 만들어서 후금 만들기 전까지는 그런 상태였다가....
후금이 중원 점령 해서 주중 본토로 들어 간 다음에는 그 때는 더 아무도 없는 땅이 됐죠....
일부 흑수여진 뭐 이런 정권에서 소외된 하층 여진족 일부만 남아 있던 듯 합니다....
이 때도 우리가 차지 해도 뭘 어쩔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죠...
만주를 정작 차지 한거는 이양법 같은 걸로 생산력이 증대 해서 소작할 땅 조차 잃어 버린 백성들이 간도로 가서
땅을 경작 하면서 부터 진짜 우리가 차지 하게 되죠....
백두산 정계비에 청하고 영토를 책정해서 간도 지역을 우리 영토로 인정받기도 했죠....
나중에는 간도에 관찰사 까지 파견하고 그랬고...
일본 넘들이 을사조약 이후에 청한테 다시 넘겨줘 버리죠...
간도 조약이라고 해서.... 만주 철도 부설권 얻고서...
군사 체제 하고도 관련이 많이 있는 거 같기도 합니다 !!
고구려 발해 까지는 기마병이 중심이었기에 넓은 영토 관리와 방어가 됐는데....
고려 조선은 보병 중심이라.... 저 넓은 영토를 줘도 못 먹는 상태가 된거 같기도 하고요 !!!
댓글(16)
세종 때 사군육진 개척을 업적으로 삼지만, 사람 살기 힘든 그곳에 사민하느라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만주 자체가 청나라의 발상지인데, 조선 후기 몰래몰래 들어가서 살았어도 실질적으로 점유한 기간은 거의 없다고 봐야 되고, 백두산 정계비의 내용과 전후 사정을 본다면 간도를 조선 땅으로 인정했다기 보다는 그냥 잘못알고 적어놓은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