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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_H_.. | 23/11/21 06:10 | 추천 0 | 조회 74

야구 - 그 애증의 스포츠에 대하여. +7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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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고대유물이 되어버린

나의 최애 장난감 야구글러브입니다.

국민학고 3학년때 아버지와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그랜드백화점 4층에서 저 글러브를 구입했던 기억이 마흔다섯에도 생생합니다.

아버지는 MBC청룡의 열혈팬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엘지팬이 되버렸어요.

한때 아버지와 같은 업계에서 일했던 터라

35년전 아버지의 월급에서저 글러브 한개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컸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함께 야구를 하던 애들은 다 2층양옥 주인집에 살던 친구들이었죠. 저만 반지하..ㅜ

대부분의 어린이들은짬뽕이라고 부르던 유사야구를 하고 놀았습니다.

투수는 없고, 타자는 주먹으로 테니스공을 쳐서 날리는 놀이였습니다.

아버지는 야심차게 아들에게 글러브와 알루미늄 배트를 사주셨지만

아들은 야구를 잘하지 못했어요. 너무 재미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너무 어려웠어요.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내가 좌투라서 그랬던걸알게 되었습니다.

어린시절 아버지는 내가 왼손잡이라는 것을 모르셨습니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지 않으셨다는게 맞을거에요.

왼손으로 밥먹다가 혼난게 한두번이 아니었으니까 말이죠.

그러니 당시에 왼손잡이 글러브를 구하기가 어렵기도 했겠지만

있었어도 우투용 글러브를 사주셨을거에요.ㅋ

덕분에 저는 야구를 못하는 친구로 아이들 기억에 남았습니다.

하지만 배트와 글러브가 모두 있었기에 매번 경기에 참여가능ㅋㅋㅋ

외할머니이야기도 잠깐 해야되는데 외할머니는 저에게 반쯤 엄마입니다.

갓난애기일때는 그냥 할머니한테 업혀다녔고, 동생이 태어나자 저는 외가에 맡겨지다시피하고

저희 집이 통영으로 이사가게 되었을때는 혼자 서울에 남아외가에서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14명의 손주 중에서 첫손주라.. 뭐.. 대략 그렇습니다.

할머니의 버프는대단했어요.

우리집 형편에 프로야구 어린이회원 이런거는 꿈도 못꾸었는데

청룡시절부터 엘지까지 초등학교 내내 어린이회원은 물론 여름캠프에도참여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할머니는 야구를 하나도 모르십니다. 하지만 사위가 야구를 좋아하니 손주한테 턱하고 쏴주신거.. (읭ㅋㅋㅋ)

갑자기 할머니 보고싶네..ㅎㅎㅎ

(아.살아계십니다. 자주 못가는게 죄송할 뿐...)

뭐 그렇게 저는 야구를 좋아하는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개새끼전두환의3S정책의 산물인것도 맞고

팬서비스 개판인것도 맞고

일부 선수들의 인성이나 실력이 허접한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야구는 가족들의 사랑이라서 그냥 좋습니다. 어쩌겠어요.

엘지가 짜릿하게 승리하는 순간에는 늘 집에 전화부터 걸어요.

지난 주 우승하는 날에는 엄마랑 통화하는데 엄마가 "울지마라.." 라고 하시는데

와이프가 옆에서 듣고있다가

"이사람 경기시작때부터 울고 있데요~!"라고 이르길래화가나서 밤에 혼내줬.. ㅎㄷㄷㄷ

이제는저의 자식들이 공을 던지고 받는것 정도는 가능한 나이가 되었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아버지와 글러브를 사러 갔던 바로 그 나이네요.

그래서 글러브를 또 꺼내봤습니다. 물려주려고요.

그런데.. 이제는 쓸수가 없을만큼 낡았네요. 가죽끈이 막 부스러집니다.

이건 기름을 먹여도 살릴 수가 없겠네요.

나 만큼이나 나이를 먹었으니까요.

끈갈이를 시도해봐야겠어요.

포구면은 괜찮은가 손을 집어넣어봅니다. 이게 이렇게 작았었나..

문득 예전의 습관대로글러브로 얼굴을 감싸고 킁킁 냄새를 맡습니다.

그시절에 맡았던 똑같은 가죽냄새는아련한 그 순간으로 어김없이 나를데려갑니다.

"징어야 노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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