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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씨레기.. | 24/04/19 21:28 | 추천 21 | 조회 68

북한이 낙동강 전선에서 공세종말점이 온 이유. +68 [9]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6573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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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북한군은 엎어지면 부산과 코 닿을 거리인 낙동강 방어선을 뚫지 못했을까?


그 이유를 지금 역전다방(국방부에서 하는 프로그램. 2차 세계대전의 아이돌인 채승병 박사 참여.)으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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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인식과 다르게 6.25 전쟁이 개전한 극초반 6월~7월 사이에 미국의 공군은 그렇게까지 큰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다.


초보 조종사가 가득했던 북한 조종사들 사이에서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숙련된 미군 조종사들은 금세 제공권을 장악했지만.


미 극동공군이 일본에서 서울 주변까지 날아가면 10분에서 20분 밖에 폭격하지 못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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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군 조종사들은 한반도의 지형에 익숙하지 못했으며, 미 지상군이 투입 전이었기에 지상에서 폭격을 요청하는 근접항공지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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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미 극동공군은 효과적인 공격이 불가능 했으며, 공군만으로는 북한군을 저지할 수 없었다.


물론, 활약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인식과 다르게 극초반엔 활약이 미비했다.


심지어 극초반 미군은 북한군을 얕보고 있었으며, 극초반에 인천상륙작전의 모루(방어선)을 오산, 평택 수원 방면으로 설정을 해두었고.


한국으로 급파해서 시간을 끌라는 명령을 내렸던 스미스 특수임무부대(포병대대까지 붙여줌)를 6시간만에 후퇴시킨 패배를 겪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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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가선 연대장이 전사하게 되는 등 


6.25 전쟁 극초반에는 미군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고전을 연속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낙동강 전선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왜 북한군은 부산 코앞인 낙동강까지 와서 공세종말점에 다다르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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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지원왔던 전차가 퍼지기 시작했다.


전차는 장거리 이동시 수송 열차나, 트레일러가 필수였지만.


북한군은 아주 무식하게도 서울에서부터 낙동강 전선까지 그대로 전차를 이끌고 공격했다. (사실, 트레일러나 열차로 수송할 능력 자체가 북한에는 부족했다.)


낙동강 전선으로 전차를 가져올려면 소태백산맥을 넘어야하는데.


전차로 1400M 해발고도를 가진 산을 넘어간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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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남하하면서 자연스럽게 보급선이 길어졌기 때문에.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전차를 지원받아 낙동강 전선에 보내는 건 사실상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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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급선이 길어지니.


자연스럽게 제공권을 장악한 미공군이 활약할 여지가 커졌다.


극초반에서(6월~7월) 공군이 활약을 못했던 그 분노를 풀듯 보급선에 대한 폭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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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낙동강 방어선이 상기된 이유로 굳어지기 시작하자, 미극동군에도 실전 경험이 쌓이기 시작했고.


수퍼바주카의 투입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젠 그들에게 있어서 북한군의 전차는 그렇게 두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게다가 낙동강이 뚫리면 적화통일이라는 두려움에 그동안 큰 역할을 못했었던 국군도 미친듯 활약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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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전선에서도 미공군의 폭격이 증가했는데.


낙동강이라는 확실한 지형지물에 의한 경계선이 생겼기에 미 공군은 더 이상 지형지물에 익숙하지 않아도 폭격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으며.


낙동강 전선은 일본과 가까웠기 때문에 비행시간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효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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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악전고투를 벌이며 전방위로 낙동강 전선을 압박했지만.


미국의 유능한 장군인 워커는 방어선이 뚫리면 곧바로 소방수나 다름없는 예비대를 투입하여 처절하게 틀어 막았고.


결국 낙동강 전선은 9월이 지나서도 뚫리지 않았다.


이렇듯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이 공세종말점이 된 이유도 어느 하나가 결정적이었다고 보긴 어렵고.


아주 다양한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에 가깝다.


그리고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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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며.


북한의 적화통일의 꿈은 쓰레기통 너머로 구겨져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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