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십수번 차리는 가문은 양반가문의 종가 오브 종가
비슷하게 지낼수 있는 가문도 양반 가문
가풍에 따라 간소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음식이 많아도 별 문제 안됨
종주가 직접 주관하는 경우도 있고 시어머니가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문 시그니처 제외한 나머지는 그냥 아랫사람 시켜 만듦
돈과 외주로 해결
조선 후기 족보 구매로 신분세탁한 부자 평민들도 딱히 다르지 않음
돈으로 때우면 되니까
제사배틀이 성행해 너무 사치스럽다는 폐단을 논하는 것은 있어도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힘들다는 말은 안나옴
문제는 이제 시킬 아랫사람이 없는데 뭣도 없는 집에서 며느리 시어머니 갈아서 똑같이 하려니 온갖 부작용 폭발
댓글(4)
집안일 노비만 십수명씩 하던 가문서 하던걸 며느리 두세명이서 할라면 암만 현대치트 장비빨 있어도 그게 만족스레 되나
근데 25년전이면 아부지도 지옥같이 막히는 고속도로 억지로 뚫고 내려와서 고생하신거라 걍 부모님 두분다 고생많으셧음
원래 재산 음식은 남자가 만듬
여자는 어떻게 손을 안댐
대신 음식 조금만 얻어 먹어서 싫어하고
주방을 개판으로 해서 설거지 부터 힘들었다고 들었음
제사 지내고 음식 남은건 나눠먹으니까
일종의 기부기능도 있었을거야
조선시대랑 지금을 비교하면 안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