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상당히 초기부터 등장하는 번역어인데
과거, 현생, 미래의 생이 계속 이어진다는 걸 바퀴에 비유함.
근데 중국인의 사유에서 바퀴는 춘추전국시대부터 굴려먹던 되게 친숙한 녀석임.
그리고 이 시대의 문헌들을 보면, 바퀴에는 당연히 회전축이 있어야 똑바로 굴러간다는건 상식 of 상식.
그런 까닭에 윤회라는 수레바퀴가 구른다는 것은, 그 수레바퀴를 굴리는 회전축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됨.
그 회전축이 뭐냐? 하면 바로 생과 상관없이 유지되는 아트만, 즉 아(我)를 말하는거지.
그런데 불교는 무아를 말함.
무아 개념을 바퀴에 적용하면, 바퀴에서 회전축을 빼버린 상태가 연상될거임.
그런 바퀴는 이리저리 좀 구르다가 곧 회전을 중지하고 옆으로 쓰러지겠지.
이 상태가 바로 무아에서 비롯되는 윤회의 끊어짐이고, 고통의 소멸을 말하는거임.
그래서 윤회라는 번역어를 도입해서 현생 너머의 생을 바퀴에 비유하는 것만으로도
중국인들의 배경지식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불교철학적 개념들을 이해하게 만들 수 있었음.
정말 잘된 번역 사례임.
댓글(9)
근데 바퀴라고 회전축이 떠오름?
조금 생략했는데, 노자에서부터 수레바퀴에 비유해서 저런 철학적인 이야기가 언급됨.
처음에 불교 도입될 때가 노장 유행하던 시기라서 바퀴? 하면 바로 바퀴살이랑 바퀴축이 떠올랐을 거임.
회전이라는 운동 자체가 중심에서 같은 힘으로 당겨지는게 기본으로 움직이는 운동이니깐;
아 그러니 참 나인 아트만을 깨달으면
영원한 나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거군요!!!
바퀴축인 아트만만 있어서는 생이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도 함축할 수 있음.
우리가 잘 인식을 못 해서 그렇지 바퀴라는게 인류를 바꾼 대 발명 중 하나라
고대인들에게 바퀴라고 하면 더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했을 거임
뭐 저 번역어가 처음 유포된 시기는 대략 2세기경이니까 그렇게 아주 고대까진 아님 ㅋㅋㅋ
것도 끌 수 있는 가축이 있어야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던데. 마야 문명은 그게 안되어서 기껏 장난감에나 바퀴가 쓰였다나
원래 단어는 뭐야?
원래 단어는 바퀴라는 비유가 없는 단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