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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칫솔 | 19/08/23 12:39 | 추천 32 | 조회 4648

BRIC에 현직 교사가 올린 글입니다. 아주 긴 글이지만 울컥하는 게 있네요. +362 [40]

뽐뿌 원문링크 m.ppomppu.co.kr/new/bbs_view.php?id=issue&no=170994

요약 먼저 읽으시고 맘이 움직이시면 아래 전문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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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대부분의, 99.9%의 고등학생은 그러한 프로그램에 참가할 기회가 없습니다. 적어도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합니다. 단지 부모님이 지방에서 산다는 이유로, 좋은 고등학교가 아닌 지방 일반계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아무리 착하고 성실하고 열정을 갖추고 총명하다 한들, 꿈을 이루기 힘든 것이 증명된 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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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가입하자마자 글을 쓰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과학도가 아니며, 석박사도 아닙니다. 인문계열 학부 졸업생입니다. 저는 지방 국립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운 좋게 임용시험에 합격하여, 올해 10년 째인 짧은 교직생활을 고등학교에서만 근무했습니다. 그래도 운이 좋았던 건지 10년 중 7년을 고등학교 3학년을 담당하였습니다. (짬이 안 되어서 힘든 기피 학년을 맡은게 아닙니다. 고3 하고 싶어하는 선생님들 많은데, 저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매번 지원했습니다. 1급 정교사 연수도 1년 미뤄 가면서까지요.)

저는 광역시가 아닌 시골과 중소도시에서만 근무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2010년 기간제 근무를 하던 해는 공업고등학교에서 담임을 맡았는데, 저희 반 30명 중 11명이 기초생활 수급자였습니다. 아마 강남의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전교생 중 기초생활수급자가 11명이 안 될 겁니다. 그 이후의 교직생활도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것 이상으로 열악한 지역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이 곳 브릭에는 다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회원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현 사태와 관련하여 브릭의 글을 소개해 주셔서 읽다가 이렇게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정치적인 글, 분란을 일으키고 싶은 글을 쓰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고등학교 선생님의 눈으로 본 글도 하나의 참조가 되실까 하여 몇 글자 적고 갑니다.

제가 2010년도에 교직생활을 시작하였으니, 본 사건이 일어난 것은 제가 첫 교편을 잡기도 전의 일입니다만, 그래도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압니다.

입학사정관제가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는 여기서 판단할 내용이 아닙니다만, 조국 후보자의 딸이 대학 입시를 하던 때는, 입학사정관제 도입의 초창기로 아직까지 규제가 적었던 시기입니다.

덕분에 고려대학교 입시요강도 보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아예 대학에서 비교과 활동 (과목 학업이 아닌 활동), 그 중에서도 외부 활동 (학교 외)도 평가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약 2013~14년 경부터 (제 기억이 정확치 못해서 확실한 시기를 못 밝힘을 사과 드립니다.) 외부 활동 기재는 금지되었습니다. 자기소개서 및 학생생활기록부에 이러한 내용을 기재하는 것은 불법이며, 학생의 대학 입시에 결정적인 흠결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고려대 요강에서 보여지듯, 그것이 정성평가의 요소로 당당하게 활용되는 시기였습니다.

조국 후보자의 딸이 논문을 쓸 수 있냐, 없느냐의 문제는 과학도가 아닌 제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이곳 브릭의 글들을 쭉 읽어 보았지만 이곳에서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저 논문을 조국의 교수의 딸이 작성할 수 있었다고 가정합시다.

하지만 저는 정말 궁금한 것이 "왜 외고 2학년 여고생"이 "교수의 사비"로 연구하는 내용도 아니고, 엄연히 학술재단의 연구비를 받는 사업에서 방학 기간을 활용하여 "제 1 저자" 가 되느냐 입니다.

상식의 선에서, 고등학교에서 배워야 할 내용은 대학에서 공부할 내용의 기초가 되는 교과의 내용, 건전한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의 덕목, 사회성과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질 등입니다. 우리 교육이 이전까지 너무 학업만 강조하고 성숙된 시민의식을 함양하는데 부적절하였다는 비판에서 시작된 것이 입학사정관제를 비롯한 수시제도입니다.

제 상식으로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외고 2학년 여고생이 방학 기간동안 저 같은 사람은 제목을 읽고 이해도 못할, 학생들이 국어과목에서 제일 어려워 하는 과학,기술 비문학 지문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어려운 영역에서 제 1 저자로 활동해야 하는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전문적인 영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대학 입학 후의 과정이지, 고등학교의 과정이 아닙니다. 요즘 선행학습 금지라 하여 수학과 선생님들 시험 출제할 때 골머리를 앓습니다.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외치며, 선행학습도 금지하며 학생은 학생답게를 강조하면서 어째서 제목조차 일반인은 접근도 못할 내용을, 그것도 과학고나 이과생도 아닌 외고생이 영어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해야 하는지 저는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교육학을 배울 때 평등에 대해서도 배웁니다. 평등의 4가지 단계는 허용,보장,조건,결과라 외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배운 교육학의 내용으로 생각해 보면, 논문을 쓸 수 있다 없다의 검증 문제는 과학도의 영역이라 손 치더라도, 이렇게 논문을 쓸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평등이 아닙니다. 

저는 시골의 열악한 학교에서만 근무를 했고, 물론 제 제자들 중에도 이른바 명문대에 들어간 학생들이 꽤나 있지만 농어촌 전형, 서울대 지균, 생활보호자 전형 등이었습니다.

수시를 지도하면서 늘 화가 나면서도 답답했던 것은, 이것은 분명히 공정한 싸움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잠 못 자며 학생들 생활기록부 정리해 주고, 자기소개서 봐 주고 (어지간하면 그냥 교사가 씁니다. 이게 부정이라면 부정이겠죠. 여러분들의 고등학교 생활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과생이 4~5천자 자기소개서를 비문없이 완벽하게 쓸 수 있는지) 노력한다고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떨어지고, 왜 떨어졌는지도 알 수 없었고...

이번 사건을 보면서 저도 교직에 대한 회의가 들고 심한 박탈감을 느낍니다.

제가 청춘을 바쳐가며 매주 80시간, 90시간을 학교에서 거의 살면서 해 왔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가.

물론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은 교육의 본질적 목표가 아닙니다. 저도 그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제가 운이 좋았는지 제 제자들 대부분이 착한 아이들이었고,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시거나, 아니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어려운 환경에서, 오로지 공정한 것은 교육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해서 보다 나은 삶,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삶을 희구하며 밤잠 설쳐가며 노력했던 아이들인데 그런 아이들의 노력이 배신당한 느낌입니다.

대한민국 대다수의 평범한 학생들은, 저러한 의대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제가 담당했던 학생들 중에서도 머리가 정말 총명하고 성실한 학생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학생은 저런 프로그램에 접근조차 할 수 없습니다.

저런 프로그램이 있다고, 공고를 내고 지원자를 받고 나름의 절차에 의해 선발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고교 교사로서, 제가 보는 본질은 이것입니다. 이미 출발선상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결과도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화가 납니다.

이과생들에게 의대 입학이 어떤 의미인지 아실겁니다. 자사고나 유명한 고등학교가 아닌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혹시나 학생이 몸이 안 좋아서 1년에 4번 실시되는 내신 시험에서 1번이라도 과학이나 수학과목을 망쳤을 때... 울고 불고 하는 아이들의 눈물을 조국 후보자와 그 딸은 이해라도 할 수 있을까요.

조국 후보자의 딸은 의대에 입학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기 계신 분들도 아실겁니다.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과는 의전원에 진학하는데 매우 좋은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어서, 의대 대신 의전원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매우 선호하는 학과입니다. 한마디로 그만큼 입결도 높습니다.

저는 외고생이 왜 저런 허혈성 뇌손상, 신생아, 이런 어려운 주제에 참여하는지 추론이 가능합니다. 아예 이 분야로 진로를 한정하고 최대한의 스펙을 쌓았겠죠. 그것도 열린 문이 아닌 밀실의 문을 통해서 말입니다.

고등학교에서 한번이라도 입시를 담당해 본 분이라면, 왜 학생이 저런 활동을 하는지 압니다. 정말 학문적인 탐구심과 호기심이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스펙을 쌓았던 것이겠죠. 그 스펙을 쌓을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이미 평등하지가 않습니다. 그 과정 조차도 저는 외고 2학년 학생이 도저히 2주만에 쓸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등학생들 정말 많이 바쁘고 힘듭니다. 내신 준비하랴, 수행평가 하랴, 야자 하랴, 동아리 하랴, 독서 하랴 (보통 상위권 대학 진학 준비하려면 서울대 같은 경우 독서 이력도 있어야 합니다).. 잠 잘 시간도 부족한 학생입니다. 그런데 무슨 허혈성 뇌손상을 탐구하기 위해서 2주동안 3시간씩 통학을 하고, 제 1 저자로 논문을 써 내고..

저는 수학,과학 교과가 아니지만 남자라는 이유로 이과반 담임도 절반 가까이 했는데, 제가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쌓아줄 수 있는 스펙에서 저렇게 대학 연계 프로그램은 시도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저 학생들에게 우리는 시골의 학교이고, 우리가 경쟁해야 하는 대도시 좋은 환경의 학생들과는 같은 방법으로 이길 수가 없다. 우리만의 방법을 찾자. 그러면서 제가 강조했던 것은 봉사활동, 독서 등입니다. 특히 의학계열을 지망하는 학생들에게는 봉사활동을 많이 시켰습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신의 스펙을 내세우는 당당함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이 먼저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책을 독서클럽을 만들어서 같이 읽고 발표하고 (이 마저도 고등학생이 다 읽기에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디어를 냈던 것은 책이 13개 파트이니 이걸 약 6등분 해서, 6개 조를 나누어서 2개 파트 정도를 읽고 그 내용을 정리해서 다른 학생들에게 소개해 주는 정도였습니다. 편법이라면 편법이지요) NGC 에서 나온 다큐멘터리 코스모스 중에서도 좋은 내용은 보게 하였습니다. 

특히 칼텍 교수였던 클레이 패터슨이 휘발유에서 납 첨가를 막았던 것, 무연 휘발유가 연기가 없는 휘발유라는 뜻이 아니라 "납" 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너희들도 자기소개서 그런 양심적인 과학도가 되고 싶다고 써라, 이렇게 많이 가르쳤습니다. 

제가 봉사활동과 책읽기를 강조하며, 없는 시간 쪼개가며 1,2학년 애들 데리고 (제가 고3 담임이지만, 학교가 워낙 작기 때문에 1,2학년 입시까지 미리 챙겨야 합니다.) 봉사활동 하러 가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같이 읽고 발표하며 우리 학생들이 참 기특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그렇게 노력을 했을 때 누군가는 저렇게 결과를 내었습니다. 저는 별 보잘 것 없는 교육자이지만 정말 부끄럽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했던 방법이 결과적으로는 틀린 것 같아서입니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법칙은 영화 친구에 나왔던 유명한 한 대사였지, 선량함과 도덕성이 아닌 듯 하여서 말입니다.

 

이곳은 과학 커뮤니티인데 제가 이렇게 과학과 상관없는 글을 적었으니 삭제 하셔도 되고 저를 비난하셔도 됩니다만, 워낙 울적한 마음에 적어 보았습니다. 저도 촛불을 응원하고, 탄핵을 기뻐하며 이번 정부의 출발을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첫 발자국으로 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게 무엇인가 싶습니다. 

제 눈으로 보았을 때는, 고등학생이 학교에서 교과 수업 대신, 학교의 비교과 활동 대신 일반 학생은 참여조차 할 수 없는 저러한 활동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기회의 불평등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결과의 불평등이 초래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수능 최저도 없는 수시에서, 비교과, 교외 활동도 다 반영되는 입학 전형이었기에 외고생이 고려대 환경생태과에 합격 하는 비상식이 초래된 것입니다. 절대로 저러한 교외 활동이 없이는, 일반계고 국영수 내신 1.1, 1.2도 떨어지는 저 인기 학과에 이과생도 아닌 "문과생" 이 합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즉 조국 후보자의 딸이 정말 천재여서 저 논문을 스스로 작성하였다 하더라도, 저는 여전히 분노합니다. 그 과정 자체가 평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입학사정관제의 부정 문제는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그것 까지 논하기에는 주제가 너무 넓은 듯 합니다.

수능 제도가 입시에만 매몰된 괴물을 만들어 낸다고, 인성이 없는 학생을 공장에서 찍어내는, 5지 선다의 신을 뽑는다는 비판으로 만들어진 수시 제도는 더한 괴물을 만들어 낸 것 아닙니까...

외고생, 영어에 능통한 외고생이 하는 비교과 활동이란 외국 대사관에 영어 편지를 보낸다거나, 영어로 된 홈페이지를 만들어 본다거나, 외국 학교와 공식,비공식적으로 교류하는데 자신의 영어 능력을 활용한다거나 이러한 것들이 정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논문은, 비록 영어를 아주 못하는 저이지만, 영어 커뮤니케이션이 된다고 해서 쓸 수 있는 수준이 아닌 듯 합니다. 이미 저 용어들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영역입니다. 엄청난 배경 지식이 없으면 쓸 수 조차 없어 보입니다. 고등학생이 고등학생 답게 생활하고 이를 평가하는 것이 입시 아닙니까? 왜 대학에 가서 할 것을 미리 하고 그걸로 아주 희박한 확률의 문과생의 고대 환경생태과 최저 없는 수시 가기 같은 결과를 도출해 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국 후보자의 딸이 저 논문을 직접 썼느냐 안 썼느냐의 문제, 연구 윤리 문제를 위반했느냐의 문제는 과학의 영역에서 판단해야 할 사항이지만,

지방의 가난한 학생들과 함께 청춘을 보내며, 그나마 나를 희생해서 제자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 저 같은 보잘 것 없는 교사 한사람으로서도 이번 사건은 박탈감이 정말 심합니다.

연구 윤리 문제에 있어서, 설사 조 후보자의 딸이 상당한 기여를 하여 제 1 저자가 되는 것이 맞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이해 할 수 있고 수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브릭의 글을 읽다가 보니, 어떤 분들은 이 연구 자체가 학생들의 연구 경험을 쌓게 하고 교육을 하는데 목표가 있었고 교신 저자가 제 1 저자를 충분히 고등학생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시는 것 같은데

전국 대부분의, 99.9%의 고등학생은 그러한 프로그램에 참가할 기회가 없습니다. 적어도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합니다. 단지 부모님이 지방에서 산다는 이유로, 좋은 고등학교가 아닌 지방 일반계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아무리 착하고 성실하고 열정을 갖추고 총명하다 한들, 꿈을 이루기 힘든 것이 증명된 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두서 없는 글이 길었습니다. 정치적인 글이면 지우셔도 됩니다.

워낙 답답해서 적어 봤습니다. 과학도가 아니면서 이곳에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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