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산 지청천
배재학당 출신이며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출신의 무장투쟁 독립운동가
1907년 한국 군대가 해산되자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로 들어간다”는 일념으로 일본육군중앙유년학교로 편입하였고
1910년 경술국치가 있자 조선인 출신 학도들을 모아
일본의 군사교본을 배워 조선 독립에 일조하자는 ’아오야마의 맹세‘를 하였음
1914년 일본군 보병소위로 임관하였고 1919년 동기 김경천과 함께 탈영하였음
그들은 만주로 가 서로군정서의 일원이 되었고,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이 되어 1000여 명의 군관을 길러냄
그러나 일본군이 만주에서 조선인을 말살하기 위해
1920년 간도에서 학살을 벌이는 간도참변을 벌이자
청산리에서 진격하는 일본군에 한 방 먹이고
전열을 정비하여 러시아 지역으로 가서 독립운동을 지속하려 하였는데,
웬걸 소련군이 무장해제를 요구하면서
독립군을 학살하는 자유시참변 사태가 발생하면서
살아남은 병력을 수습해 이르쿠츠크로 이동, 고려혁명군과 연합해 독립운동을 이어나감
그러나 소련 당국의 규정과 고려혁명군의 교육방침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련에 투옥되었고 사형 언도를 받았는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적극적으로 구명 활동을 펼쳐 3개월만에 석방됨
이때의 경험 때문인지 이후 그는 반공주의 색채를 띠는 우파에 가까운 행보를 많이 보임
이후 1924년 정의부, 혁신의회, 한국독립군 등의 간부를 역임하며
무장투쟁을 이어나가다가
윤봉길 의거로 인해 중화민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후원하면서 창설된
한국광복군에 이범석, 오광선, 김창환 등과 함께 초빙되어
1934년부터 대한민국의 총사령관에 임관함
그는 한국광복군을 확대하고 중국 관내의 독립운동 단체들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고,
대외적으로는 미국 OSS와 협의해 장준하 등 100명의 한인을 파견해 훈련시키기도 하였음
광복 후에도 그는 중국에 남아 광복군 조직을 확대하고
한국군으로 편입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1947년 장제스가 제공한 비행기편으로 귀국하였음
장군님 너무 멋있어
댓글(12)
하지만 철거대상 흉상인걸로
대신 백선엽 검토는 진짜 미친 쓰레기새끼들....
지청천은 1대 대통령도 지지했고 6.25에도 참전했던
우파 출신인데 대체 왜지??
백선엽은 아무리 좋게 쳐줘도 1-1=0임
매국노의 과오를 6.25의 무공으로 탕감해서 백지 정도로만 쳐주는 것으로 끝나야 했음
'반일'행적이 거슬리는거니까
뉴스 제목에 이유가 있잔아. 독립영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련처럼 굴라그에라도 쳐넣고 다리하나 자른담에 복귀시켰어야
독립운동해서
상남자
혹자는 미국이 다 해줬지 독립군이니 독립운동이니가 뭐냐고 하기도 한다!
물론 미국의 덕을 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허나, 3.1운동을 시작으로 유봉길 의사를 비롯한 임정과 만주땅의 순국선열들이 흘린 피가 없었다면, 장중정의 독립 후원과 주장은 물론이고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 인사들이 우리들의 독립의지를 인정하지도 않았을 것
그 이치를 생각하면 그런 발언은 곡학아세요 이장폐천이며 언어도단에 불과한 망언이다!
랄랄랄라 씨스뿜바!
이분도 대단하지만 김홍일 이분도 대단하시지. 중화민국에서 2성 한국에서 3성 달은 이른바 5성장군 이분은 6.25때도 활약하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