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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af].. | 19/10/10 23:28 | 추천 3 | 조회 1202

동생이 매일매일 죽어버리기를 기도했습니다. +566 [20]

SLR클럽 원문링크 m.slrclub.com/v/hot_article/676274




안녕하세요 지난번 아래 링크 글쓴이 입니다.


http://www.slrclub.com/bbs/vx2.php?id=free&no=37432849&cmtno=336807...


많은분들이 동생 마지막 가는길을 배웅해 주셔서

저도 가족도 모두 동생을 잘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냥 한 번쯤...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으로 살고 있다는 정도로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취기에 쓰는것도 있고 디테일하게 쓰기도 어렵고 조금 두서없는 내용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죽은 제 남동생은 정신지체 장애 2급 입니다.


어릴때는 정신지체 장애에 대해 몰랐습니다. 동생이 조금 아프다는것 정도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동생이 그냥 빨리 일어나 걸었으면...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소리를 내고 걷기 시작하면서 저희 가족의 고통도 같이 시작 되었습니다.

동생은 수시로 고성을 지르며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고 밖에서는 아예 통제 불능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마트에서 아이가 장난감 사달라며 때를 쓰듯 동생은 바닥에 누어 괴성을 지르며 누어버리는 경우

이걸 들고 자리를 이동해야 하는데 힘은 또 얼마나 좋은지 어머니가 그 동생을 억지로 들고 자리를 뜨는 날이 많았습니다.


동생이 혼자 나갈때면 기물파손으로 전화가 오는날이 많았습니다.

한 번은 비싼차 사이드미러를 파손하여 큰 돈을 물어준적도 있습니다.

그외 크고 작은 기물 파손으로 배상을 해주거나 빌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생계의 어려움으로 아버지 어머니가 일을 나가면 동생을 방에 가두고 나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반 방문에 밖에 자물쇠를 걸어 두었죠.

그러면 동생은 또 괴성을 지르며, 문을 부수곤 했습니다. 이게 동생이 10대일때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문과 방에 집기들을 부수다가 동생이 다치는 상황이 와도 동생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게 뭐 가끔 있는 일이 아니라 일상이었습니다.



동생이 20살이 넘어가고 조금은 상황이 좋아졌습니다. 말이 소통이 가능해졌고, 아주 조금은 컨트롤이 가능해졌습니다.

약 4-5세 정도 아이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 이쯤 되고 나서 동생의 생활은

낮에는 인터넷으로 목사님들의 강의나 119 구조대 영상을 보고

밤에는 가족이 알지 못하게 여기저기 돌아 다니다가 경찰에게 잡혀서 경찰차를 타고 집에 귀가 했습니다.

경찰분들 또 소방관분들에게 밤에 찾아가 몇년동안 정말정말 많은 폐를 입혔습니다.



이게 법이 뭐라고 경찰분들이 그냥 쫒아내면 알아서 집에 찾아 올 수 있지만

동생을 집을 모른다고 하면서 가족인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경찰차를 타고 집왔습니다.



또 어느 날은 택시기사들이 혼자 방황하는 동생을 잡고 태워와서 야간 할증까지

떡 붙은 택시비를 요구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동생을 이게 좋았는지 그 다음부터는 혼자 택시를 잡아 타고 집에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많이 혼났지만 그 때 뿐입니다.



늘 저희 가족은 동생의 존재 때문에 금전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 또한 동생의 존재 때문에 파혼을 당한 경험도 있습니다.

여동생도 다행히 좋은 남자를 만났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언젠가 '동생이 밤에 길을 가다 차에 치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해서는 안될 생각이지만 그때 저는 지금보다는 많이 미 성숙 했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흘러 동생의 나이는 30이 넘어갔습니다.



저도 좋은 사람을 만나 늦게나마 결혼을 하고 회사도 좋은곳으로 이직하고

내년엔 차를 사서 가족과 가까운곳 나들이 갈 생각도 하고

얼마전에는 lh도 되서 이사도 했습니다.

가정도 집도 가족도 어느정도 안정기에 막 진입 할까 말까 하는 지금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는 그 생각대로



동생은 밤에 길에 가다 차에 치어 죽어버렸습니다.



병원에서 머리에 피가 고여 얼굴이 엉망진창이 된 동생의 손을 부어잡고 얼마나 운지 모르겠습니다.

제 눈앞에서 숨이 끊어져버린 동생을 보며 이게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관확인때 피범벅이 된 동생을 보았고 입관식때 파랗게 된 일그러진 얼굴의 동생을 보았습니다.

발인전날 안 먹는 술까지 마셔가서 밤새 울었습니다.




2년만 늦게 죽었다면 조금은 좋았을까?

앗싸리 일찍 죽지 왜 자리 잡혀가는 지금...

왜 형 노릇 할 기회를 주지 않았나...

별별 생각이 다들었습니다.



그렇게 동생은 차가운 시신에서

뜨거운 백색 가루가 되어 저에게 돌아왔습니다.




.....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일전 형을 택배차 묶고 다니며 폭력을 행사한 동생이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에게 잡혀갔다는 기사의 덧글들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폭력을 정당화 될수 없다"


물론 정신지채 아이와 잘 사는 가족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족들은 위에 택배기사 동생과 비슷할겁니다.

저희 가족도 어루고 달래고 때려도 보고 정말 여러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컨트롤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항상 사람들의 멸시 무시 차별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신체장애와 다르게 혜택도 적습니다. 격리시설에 들어가려면 몇년씩 줄을 서야합니다.

그러니, 정신지채 장애를 글로만 보고 이해하는 그런건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한줄 요약


어제 너무너무너무 나도 감사합니다.

우강기사는 여러분의 배웅에 무사히 천국에 도착하였습니다.

감사감사감사 너무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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