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이 자기 딸 시집보내려고 이속이란 관리한테 혼담 넣었더니
'으디 천한 궁녀가 낳은 딸년을 내 귀한 아들이랑 맞붙이려 들어? 내 아들 죽어서 없음 ㅅㄱ'
이랬다가 개빡친 태종이 곤장 100대 크리 때리고 노비로까지 만들면서 인생 졷망한 '이속'좌
근데 이런 용자 (라 쓰고 ㅁㅊㄴ이라 읽는다) 는 이속 말고도 넘쳐났으니...
1. 무릎안마 할 때 웰케 시원찮냐 잔소리 했다고 태종 무릎에 진심 펀치 날린 궁녀
2. 왕실 신주단지 모시는 데에 걸터앉아 노가리 깐 내시들
3. 꼽좀 줬다고 태종 면전에서 들고 있던 자 바닥에 내동댕이친 분노조절장애 내시
4. 말도 안 되는 억하심정으로 세종 마누라가 수선 맡긴 옷 박박 찢어발긴 미치광이 궁녀
...조선 초기는 대체 뭐였을까?
댓글(34)
조선 초의 결혼은
생각보다 처가의 비중이 겁나 큼....
를 생각해도 ㅁㅊㄴ 맞음
이러나저러나 해봐야 결국 역모성공해서 세운 왕조이니
왕조 초창기라는 걸 생각하면 아직 민심을 다 잡긴 어려웠다는 의미고
자비로울 때는 자비롭다는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한 시기긴 했다는 의미지.
정적이 수시로 튀어나왔던 탓에 칼로 싹 다 정리하긴 했다만,
그렇다고 정적 아닌 궁궐 내부 인원까지 족치기엔 여러모로 민심에 뒤탈이...
게다가 태종 즉위는 조선 왕조 열린 지 고작 9년 뒤의 일이기 때문에
예법을 다잡을 인원도 내부 인원 고용도 고려 왕조 때의 사람에 많이 의존했을 거임.
아차 하면 잠자리도 편해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좀 패악질 쳐도 눈감아 줬겠지.
원래 강력한 왕권이 그리 쉽게 나오는게 아니더라...
고려때만해도 참 가지가지 있던거 생각하면(이자겸이라던가)